The force that through the green fuse drives the flower / Drives my green age; that blasts the roots of trees / Is my destroyer. / And I am dumb to tell the crooked rose / My youth is bent by the same wintry fever….by Dylan Thomas
배신의 칼춤!
September 15,2012
hit:(6107)
Link#1 :
Link#2 :
2000년대 초 구글의 “Don’t Be Evil” 모토가 등장했을때 애플은 반마이크로소프트 최전선의 우방으로 구글을 받아들였다. 구글의 대표 에릭 슈미츠는 애플의 이사회멤버이기도했다. 헌데 두 회사가 스마트폰 시장에서 자웅을 겨루는 경쟁관계가 되면서 두 회사의 관계는 하루 아침에 휴지통속에 처박혔다. 잡스와 애플은 구글이 특허를 받아놓은 iOS 기능들을 안드로이드가 훔쳤 가겨갔다는 결론을 내렸다.
현재 전세계 각지에서 애플은 구글 안드로이 스마트폰 제조사를 상대로 약 50여개의 소송을 벌이고 있다. 최근 캘리포니아 산호제 연방법원에서 애플은 특허침해를 인정한 배심원 평결로 삼성으로부터 10억달러의 배상금을 받게됐다. 또 독일에선 모토롤라의 안드로이드 폰이 애플의 특허를 침해했다는 재판결과를 얻어내며 판매금치 조치 수순에 돌입했다.
하지만 애플의 칼끝이 삼성이나 모토롤라가 아니라 구글을 겨냥하고 있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제조사를 상대로 소송을 벌인 이유도 공짜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로 구글이 돈을 버는게 아니라 제조사만 돈을 벌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모 아니면 도” 방식의 싸움을 벌이는 애플의 동기는 과연 무엇일까. 시장 점유율이나 스마트폰 경쟁에서의 우위를 차지하기 위함이 아니다. 이는 배반감에서 출발한 감정선의 폭발이다. 그렇기 때문에 애플의 궁극적인 목적은 배상금이 아니라 구글 안드로이드의 완전한 사멸이다. 왜 사태가 이지경이 됐는지 살펴보자.
2001년 구글은 실리컨벨리의 떠오르는 인터넷 신생 회사였다. 창업 3년만에 자본금 5천만달러를 확보한 인터넷 검색 회사로 이름을 알리는 중이었다. 하지만 20대 초반의 두 창업자는 테크놀러지 업계의 "다스 베다이자 빅 브라더"로 통하는 마이크로소프트로부터 언제 칼 맞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전전긍긍 모드였다. 당시 마이크로소프트는 전세계 PC 운영체제를 석권하면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르고 있을때였다. 웹 브라우져 넷 스케이프가 함부로 대들다가는 단칼에 처단당하는 일까지 벌어졌었다.
스탠포드 출신의 두 창업자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빈은 이런 분위기 속에서 당시 애플의 부활을 지휘하던 스티브 잡스를 찾아갔다. 멘토가 되달라고 애원하면서 가능하면 구글의 대표로 자신들을 이끌어달라고 고개숙여 간청했다.
이미 픽사와 애플의 대표였던 잡스가 이들의 대표직 수락 요구를 받아주진 못했지만 두 젊은이를 기특히 여기면 자신의 수제자처럼 받아들인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 때부터 잡스의 구글 사랑은 남달랐다. 집으로 초대하고 친구들과의 자리에 두 젊은 인터넷 스타들을 대동하곤 했다. 잡스 역시 HP의 패커드 회장과 인텔의 노이스 회장 등 실리컨 벨리의 기라성같은 선배들에게서 도움을 받았었고 이 때문에 구글을 보호하고 이끌어줄 도덕적 책임을 갖고 있다는 사명감을 가고 있었다..
잡스는 자신의 절친이자 애플 이사회 멤버였던 빌 캠블까지 페이지와 빈에게 소개시켜주며 도와주라고 당부했다. 캠블 역시 실리컨 벨리의 내로라하는 회사를 운영했던 경영자 출신이었고 콜럼비아대학 미식축구팀 감독을 역임했던 이색경력의 소유자였다. 지도자의 자질을 갖추는데 캠블의 조언보다 더 훌륭한 것은 없다는게 잡스의 생각이었다.
당시 야후와 여타 포털 사이트의 인터넷 검색기능이 존재했지만 구글은 전혀 새로운 방법을 통해 인터넷 광고 혁명을 가져왔다. 잡스는 두 회사가 결코 충돌할 일이 없을것이라는 확신속에 구글과 애플의 윈윈 협력관계를 구축했다. 동시에 공동의 적인 마이크로소프트를 대적하자는 포석을 깔아뒀다. 이런 전략은 매우 성공적인 것이었고 이후 잡스는 페이지와 빈이 에릭 슈미츠를 CEO로 영입할 것을 적극 추천했다. 두회사의 관계는 가족처럼 연인처럼 우애와 사랑으로 똘똘 뭉쳤다.
서로 다른 영역에서 사업성공을 이룬 두 회사였지만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디지털 업계의 미래를 보는 두 회사의 시각은 똑 같았다.
아이팟의 성공으로 소비자 가전에 발을 담근 애플은 휴대폰과 MP3 그리고 인터넷 커뮤니케이션 기능이 하나로 융합돼야한다는 것을 필연적으로 알고 있었다. 이미 타블렛 운영체제를 고민해오던 애플은 2004년부터 타블렛이 아니라 스마트폰이 먼저다란 결정을 내리고 비밀리에 아이폰 개발을 서둘렀다.
한편 데스크톱 영역의 인터넷 광고 사업이 회사수익의 99%를 차지했던 구글로서는 사업 다각화외에 대안이 없었다. 또 인터넷 광고 사업은 마이크로소프트와 야후로부터 치열한 공격에 놓이면서 시장점유율이 줄어들 것은 기정사실이었다.
이 때문에 구글은 실리컨벨리의 벤처 기술회사들을 마구 잡이로 인수했다. 유투브도 그중 하나였다. 하지만 제아무리 컨텐츠를 확보해도 PC인터넷은 한계가 보였다. 슈미츠, 페이지와 빈은 구글의 미래가 모바일 인터넷에 달렸다는 생각을 하게됐다. 이런 가운데 구글은 2004년 이동통신 사업 진출을 꾀했지만 실패로 끝나버렸다. 그러던 중 구글은 또 2005년 애플 출신의 엔지니어 앤디 루빈이 만든 모바일 운영체제 안드로이드 회사를 3백만달러의 헐값에 인수해버렸다. 값도 쌌고 혹시나하는 생각의 인수였지 스마트폰을 직접 만들 계획을 세웠던 것은 아니었다.
2006년 8월의 어느 날 밤 잡스는 에릭 슈미츠를 집으로 초대했다. 여느 때 처럼 사업 이야기를 나누다가 잡스는 슬그머니 애플의 아이폰 개발을 알려줬다.
이유는 아이폰의 성공에 구글의 힘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구글 맵, 유투브 등 구글의 콘텐츠 서비스를 아이폰의 간판 기능으로 내세워야했다. 철저한 비밀주의로 유명한 잡스가 아이폰 개발을 슈미츠와 의논한 것을 보면 어느 정도로 구글을 신뢰했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아이폰 존재를 알게된 슈미츠는 그날로 페이지와 빈을 불러들였다. 그가 내뱉은 첫 마디는 "큰일났다"였고 "오늘부터 당장 우리도 개발을 시작해야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애플 이사였던 슈미츠는 철저하게 구글의 안드로이드 운영체제 개발을 비밀에 붙였다. 안드로이드의 실체가 조금씩 알려졌을때도 잡스에게 자신들의 계획은 아이폰과는 전혀 상관없는 것이라고 떠들었다.
아이폰 출시 이후 급격하게 몸상태가 나빠진 잡스는 구글에 대한 의심이 조금씩 들기 시작했다. 아이폰은 이미 출시됐고 시장을 주도하는 상황에서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었지만 한가지 중요한 문제가 있었다. 아이폰에 이어 타블렛 개발 착수에 들어갔기 때문에 이마저 슈미츠에 정보를 넘겨줘선 안된다는 판단이었다. 이때부터 잡스는 이사회의 소집할때 모바일 의제가 담기면 슈미츠의 배석을 제외하는 전략을 세웠다. 슈미츠 스스로도 나중에 말했지만 “크기만 달라진 아이폰”이라고 말할 정도로 아이패드에 대해 아는게 없었다.
구글의 첫 안드로이드 스마트 폰은 지금과 많이 달랐다. 터치 기반이 아니라 블랙베리처럼 쿼티 키보드 타입의 스마트폰이었고 이 때만 해도 잡스는 성질을 죽이고 봐주고 있었다. 하지만 2008년 중반부터 등장하기 시작한 안드로이드폰이 아이폰과같은 멀티터치 기반으로 진화한것을 보게되자 잡스도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다는 생각을 드러냈다.
우선 슈미츠의 사임을 요구했다. 슈미츠는 자신의 사임을 미루고 미루다 2009년 봄에서야 스스로 사임했다. 슈미츠가 애플 이사로 재직하면서 애플의 비즈니스 플랜과 비밀전략을 빼돌린 것은 공공연한 사실로 드러났고 구글은 스마트폰 뿐만 아니라 디지털 음원 및 전자출판물 클라우드서비스 등 애플의 코어 사업에서 사사 건건 충돌하기 시작했다.
잡스는 2010년 초 아이패드 키노트 직후 직원들을 앞에서 공식적인 대구글 선전포고를 선언했다. "구글의 Don't Be Evil 모토는 새빨간 거짓말이다. 명심해라! 우리가 그들의 검색사업에 진출한 게 아니라 그들이 우리의 스마트폰 사업에 진출했고 우릴 죽이겠다고 덤비고 있다."
잡스와 애플 디자이너들은 아이폰을 미키 마우스나 코카콜라와 같은 스마트폰의 상징적인 제품으로 만들기 위해 디자인 노력을 기울여왔고 모든 디자인과 제조응용기술의 특허를 받아놨다. 지금 전세계에서 벌어지는 애플의 특허소송은 바로 이런 직적재산을 자원으로 한 것이다. 전세계 각지역에서 벌어지는 소송도 그 내용이 모두 각기 다른 특허를 내세우며 싸우고 있다. 마치 갖고 있는 무기를 다르게 사용하면서 가장 효율적인 무기를 확정해 적의 심장을 도려내겠다는 전략이다.
이런 애플의 싸움을 두고 실리컨 벨리는 두가지 의견이 나오고 있다. 이정도에서 애플이 소송을 멈춰야만 소비자의 행복을 추구할 수 있다는것과 애플의 지적재산은 끝까지 보호받아야한다는 것이다. 전자와 후자사이에 의견이 분분하지만 애플을 제대로 아는 사람들은 구글과의 싸움이 쉽게 끝날 것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잡스 사후 애플의 DNA는 수없이 논의됐다. 잡스가 이룩한 발자취와 그가 새겨넣은 성공한 경영방식의 또 다른 표현이다. 애플에선 최고의 경영진부터 리테일 스토어의 일반 직원들까지 이 DNA를 가장 큰 자부심으로 여기고 있다. 특히 이들은 구글의 배신에 대해 스티브 잡스가 느끼는 감정과 원한을 너무나 잘알고 있고 이것 역시 애플 DNA의 하나다. 그렇기 때문에 애플과 구글의 싸움은 어느 하나가 죽을 때까지 누구도 말릴 수 없는 전쟁으로 치닷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