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잡스 2.0]   34. 애플 생태계...

June 03,2012                      hit:(6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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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폰이 출시된 이래 실리컨 벨리의 최대 이슈는 “iOS 라이센스”였다. iOS는 아이폰에 탑재되는 모바일 운영체제며 손가락 터치기반의 멀티 제스츄어 유저 인터페이스(UI)를 최초로 도입해 스마트폰을 새롭게 정의했다. 실질적으로 모바일 혁명을 몰고온 보석중의 보석이었다. 하드웨어는 누구나 조립해서 만들수있는 것이지만 운영체제는 뚝딱 만들어지는게 아니었다. 더우기 iOS는 유닉스 기반의 매킨토시 운영체제(MacOS X)의 라이트 버젼으로 막강한 기능과 배터리 효율성을 극대화시킨 진정한 모바일 운영체제였다.

2007년 상황에서 스마트폰 운영체제를 보유한 회사는 팜, RIM(블랙베리), 노키아, 마이크로소프트(윈모바일) 등. 하지만 애플의 사용자 경험치를 제고한 손가락 터치 방식과 포터블에 최적화된 효율성에서 경쟁상대가 되질 못했다. 또 구글에서 기획한 터치기반의 안드로이드가 뒤늦게 나왔지만 1.0 버젼에선 iOS 근처에도 접근 못하는 미약한 존재였다. iOS의 존재감은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앞선 기술력을 입증했고 혼자 스마트폰 세상의 바람몰이 독주체제를 굳히고 있었다.

실리컨 벨리 전문가들과 월스트릿 미디어는 이구동성으로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즈처럼 iOS를 라이센스화시킨다면 게임 끝”이라고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90년대 데스크톱 시장을 쓸어버린 마이크로소프트의 전략을 그대로 따라야한다는 것이었다.

사실 이런 주장은 매우 설득력을 가졌다. 전무후무한 핑거 터치 기반의 스마트폰 운영체제를 보유한 회사는 애플 뿐이었고 하루빨리 iOS를 라이센스화시키면 하드웨어 제조사는 따라올수밖에 없다는 논리였다.

하지만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에게 스티브 잡스는 여전히 일방통행의 고집쟁이였다. 잡스는 오히려 “우리가 시장싹슬이를 해야할 필요는 없다”며 “중요한 것은 애플 제품 사용자들의 만족도를 최대로 끌어올리는 제품 만드는데 집중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잡스의 진정한 경영철학을 보여주는 대목이 아닐수 없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전회장의 면목과 뚜렷한 대비를 이룬다. 게이츠는 싸움꾼이다. 시장 장악을 위해 어떤짓도 서슴지않는 경영인이었다. “2등은 없다”는 미국적 문화와도 상통하는 것이었다. 헌데 잡스는 기회를 잡고도 1등이 중요한게 아니라 “상품의 질과 디자인” 더 중요하다는 포인트를 설파했다. 세상에 영원한 1등은 존재하지않는다. 하지만 잡스가 뿌려놓은 사용하기 편한 제품, 사용자의 사랑받는 제품은 전문가들이 놓치고 있던 경영철학이었다.

되돌아 보면 지난 1984년 잡스에 의해 완성된 매킨토시 운영체제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즈 95 보다 10년이나 앞선 혁명적인 컴퓨터 운영체제였다. 하지만 잡스와 애플이 자사 하드웨어에만 적용하는 고집 때문에 디지털 세상을 평정할 수 있었던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여기에 윈도즈 독식 문화에 젖어있던 전문가들의 눈엔 잡스의 변하지 않은 고집을 보면서 새로운 모바일 세상에서 역사가 되풀이 되고 있다는 생각을 했던것도 이해할만했다.

그럼에도 잡스는 그 누구도 애플만의 기술을 사용할 수 없다는 원칙을 버리지 않았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즈가 수평적 관리시스템으로 수많은 하드웨어 업체에 제공되면서 시장을 석권하긴 했지만 그로인해 바이러스가 창궐하고 통일화되지 않은 프로그램 제작 방식 때문에 소비자와 사용자들이 불편을 감수했던것을 누구보다 잘알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잡스는 자신의 창조물이 남들의 손에 훼손되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그가 살아있는한 어느 누구도 애플 운영체제는 절대 넘볼수없는 것이었다. 게다가 아이폰 출시 발표날 잡스는 다양한 iOS기능을 설명하면서 마지막에 “애플만의 기술을 지키기 위해 특허등록을 철저히 해놓았다”고 공개적으로 말했다. 이는 향후 애플이 따라쟁이 스마트폰 제조사와 안드로이를 향한 소송불사를 의미하는 경고이기도했다.

모바일 운영체제와 하드웨어 조합이 제아무리 최상의 것이라해도 응용프로그램이 없다면 그림의 떡이다. 스티브 잡스가 애플을 떠나 실패의 실패를 경험하면서 배운 점이 바로 이점이었다. 매킨토시가 전세계 5% 점유율에 그친 이유이기도했다. 최고의 운영체제를 만들었음에도 저변화되 못한 이유는 응용프로그램(application)을 만들어줄 개발자들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또 그 응용프로그램 중에는 모든 컴퓨터 사용자가 원하는 “킬러 앱”이 반드시 필요했지만 애플과 잡스의 넥스트는 그럴수가 없었다. 사용자들은 좀 덜떨어진 DOS/윈도즈 운영체제안에서 그들이 항상 사용하는 엑셀/워드 응용프로그램 조합을 던져버릴 구실을 찾지 못했었다.

잡스는 iOS의 간편성을 무기로 iOS App(응용프로그램) 만들기에 박차를 가했다. 테스크 톱 운영체제의 10분의 1 사이즈 운영체제이며 모바일 최적화를 위해 모든 응용프로그램은 간결하게 만들어지도록 제작됐다. 복잡하고 고성능 데스크 톱 컴퓨터를 위한 프로그램과는 비할데 없이 간단한 프로그램 구조가 개발자들의 눈을 끌고 있었다.

최초 가장 중요한 모바일 응용프로그램은 인터넷 브라우져. 애플은 이미 사파리를 보유했고 모바일용을 만들어냈다. 당시 잡스는 애플 스스로 모든 iOS App을 만들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잡스의 휘하 엔지니어들은 생각이 달랐다. iOS 개발키트(SDK)를 배포해서 독립적인 개발자들을 유인해야한다고 느꼈다. 잡스와 애플 엔지니어의 치열한 내부 논쟁은 향후 모바일 세상을 주무르는데 가장 중요한 터닝 포인트였다.

수직적 통합 관리모델을 신봉해온 잡스는 제품의 포장에서부터 응용프로그램까지 모든게 애플 고유의 것이어야한다는 신념을 가졌지만 엔지니어와 간부진의 거센 반발도 만만치 않았다.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즈 처럼 운영체제만 던져놓고 개발자들이 알아서 응용프로그램을 만드는게 아니었다. 그러한 전략은 결국 바이러스 창궐의 지름길이었다.

애플 엔지니어들은 App의 다양화와 저변화를 위해 애플만의 울타리(개발 조건)를 쳐놓고 그 안에서 App 거래가 이뤄지게 하자고 주장했다. 다시말해 iOS App 개발자들은 애플의 가이드라인에 따라 제품을 개발등록해야하고 App 심사과정을 통해서 사용자들에게 해를 끼치지않는 “솎아내기” 절차를 만들자는 것이었다.

데스크 톱 컴퓨터 시대를 불러일으켰음에도 시장을 놓쳐버린 애플이 25년만에 2번째 모바일 시장 석권 기회를 눈앞에 두고 내부의 갈등은 가라앉지 않고 있었다. 이사회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애플 이사회는 사실 스티브 잡스의 친위조직이라고도할 수있지만 주식과 회사 실적에 민감하게 움직인다. 따라서 CEO와 이사회는 군신같은 관계가 아니라 견제와 균형을 이루면서 투명경영을 지향하는 관계다.

윌리엄 캠벨은 97년 스티브 잡스가 대표로 복귀하면서 영입한 사외이사. 애플 마케팅 담당 부사장 출신이기도했던 캠벨은 최고의 응용프로그램외사 Intuit의 대표이면서 잡스와는 오랜 친구사이였다. 캠벨이 2007년 여름 잡스를 집으로 찾아갔다. iOS App 정책과 관련해 두사람은 오래동안 대화를 나눴다. 캠벨은 잡스에게 애플이 키워낸 iTunes를 이용하자고 제안했다. App Store를 만들어 온라인 유통 모델을 개발자들에게 제공하면 애플의 관리감독이 용이해진다는 아이디어였다. 마침내 잡스의 고집도 서서히 꺽이기 시작했다. 아니 달라진 CEO 잡스였다. 그는 남의 아이디어에 귀를 귀울였고 그 아이디어가 자신의 아이디어보다 낫다싶으면 언제든지 자신의 결정을 180도 뒤집었다. 윈도즈 용 아이튠스는 대표적인 사례였다.

결국 잡스는 App Store로 가닥을 잡고 개발자들과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하는 몇가지 원칙을 세웠다. iOS App Store에 입점하는 각각의 App은 애플의 심의기준에 따라 언제든지 퇴출될 수 있다. 유료 App의 수입은 개발자와 애플이 각각 7대3으로 나눈다. 마지막으로 App개발 가이드라인중 최대 논란을 불러일으킨 플래쉬(Flash) 사용불가를 쳔명했다. 개발자들은 대환영이었다. 특히 7대3의 수익배분은 새로운 프로그래머 문화를 창출했다. 소수 대기업에 고용된 프로그래머를 제외한 데스크 톱 시장에서의 프로그래머들은 수익모델을 찾지못해 절망하는 수준에 이르렀었기 때문이다.

2008년 7월11일 아이폰의 두번째 신모델 3GS의 출시 하루 전날 애플은 iTunes App Store를 전격 공개했다. 500개의 App을 준비했고 이중 25%가 공짜앱이었다. 전세계 수많은 프로그래머들에게 App Store의 출현은 오아시스와 같은 것이었다. 대기업 형태의 프로그램회사만이 살아남는 시대에 1인 개발자 회사들이 봇물을 이뤘다. 반년만에 앱스토어 App은 1만5천가지를 넘었고 다운로드횟수는 5억을 돌파했다. 앱스토어 오픈한지 1년이 지나자 6만5천종류의 앱이 등장했고 다운로드는 15억회를 가뿐히 넘어섰다. 앱스토어의 인기와 성장세는 상상을 초월한 것이었다.

iOS를 탑재한 애플 아이폰이 모바일 세상을 점령했다는 상징적 논리가 중요한게 아니었다. 가장 중요한 사실은 애플이란 울타리내에서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개발자, 그리고 소비자가 공존공생하는 진정한 애플만의 “에코 시스템(Eco System), 생태계”의 완성이었고 마침내 잡스가 꿈꾸던 세상이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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