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잡스 2.0]  9. 운명의 장난... pt. 1

June 18,2011                      hit:(6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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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방지축 스티브 잡스가 90년대를 맞이했을때 그는 자신의 미래를 걱정하고 있었다. 자신을 걷어찬 애플에 대한 복수심으로 NeXT를 세우고 조지 루카스로부터 컴퓨터 애니메이션 회사인 Pixar를 인수했던 잡스였지만 두 회사 모두 성공과는 거리가 먼 행보를 보이고 있었다. 애플 신화로 1억달러 이상의 거금을 쥐고 있었지만 그 마저 Pixar 운영에 펴부으며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NeXT 설립의 목적은 워크스테이션급 교육용 컴퓨터 개발. 잡스는 수많은 대학 관계자들로부터 2천 달러 정도의 컴퓨터여야만 구매가능하다는 조언을 들었다. 하지만 88년 개발이 완료됐을때 NeXT 컴퓨터의 소비자 가격은 6천5백달러. 여기에 2천달러짜리 프린터는 별도였다.
잡스는 소형 워크스테이션을 요구하는 기업과 특수전문가 회사를 찾아 나섰다. 유닉스 기반의 혁신적이고 사용하기 쉬운 GUI운영체제 NeXT Step이 포함됐고 개인용 워크스트이션급 컴퓨터이니 당연히 가격을 제대로 받아야한다는 생각이었다.

실제 NeXT의 하드웨어와 시스템 소프트웨어(운영체제)는 잡스의 장인정신이 담긴 제품답게 테크업계가 놀랄만한 창조적인 최신 기술이 담겨있었다. 하지만 컴퓨터 주류시장에는 이미 사용하기 복잡해도 쓸만한 저렴한 제품들이 넘쳐나고 있었다. 소수의 잡스 추종세력에게 NeXT 컴퓨터는 그야말로 전무후무한 창조물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컴퓨터 주류시장을 파고들기에는 턱없는 가격이었다.

7년동안 판매된 NeXT 컴퓨터는 겨우 5만대. NeXT 컴퓨터의 뛰어난 성능 때문에 CIA와 월스트릿 증권가에 공급하는 성과도 있었지만 회사 재정을 도울만한 실적과는 거리가 멀었다.

“내가 만들면 누구든 사갈 것”이라는 잡스의 안이한 경영인식이 최대의 패착이었다면 주요 비지니스 미팅에 지각하면서까지 NeXT 오피스건물의 잔디밭 스프링클러 배치에 몰두하는 잡스의 유별난 고집의 결과였다. NeXT는 또 자본금의 30%를 샌호세 공장짓는데 퍼부었다. 최첨단 무인 공장으로 우아하기 그지없는 공장디자이었다. 이 때문에 GM, Ford 등 디트로이트 자동차 회사 간부들이 견학을 올정도였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금융과 서비스업이 대세였고 제조업은 사양산업이었다. 아웃소싱이 효율적인 시대가 됐는데도 잡스는 오로지 “스타일”을 앞세우며 뒷북치는 결정을 내린 것이었다.

잡스 신봉자였던 로스 페롯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는 한 TV인터뷰에 출연해 “잡스에 관한 TV 다큐멘터리를 보고 짝사랑을 키웠는데 그에게 투자한 것을 후회한다”고까지 말했다. 3억달러가 넘어가는 NeXT 자본금을 거의 말아먹은 상황에 대한 회한이란 것을 모두가 알고 있었다.

93년 잡스는 NeXT 직원 500명중 절반을 내보내야했다. 또 “최고의 제품을 디자인하겠다”던 자신의 꿈을 접고 하드웨어 부서를 없앴다. NeXT에서 개발한 운영체제 사업부만 꾸려가는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그 역시 잘될것이란 보장은 없었다. 잡스에겐 최악의 해였다.

NeXT의 실패가 자명해지면서 실리컨 벨리의 아이돌스타 스티브 잡스의 명성도 서서히 사라져가는 판국이었다. 그의 자리를 대신해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 유명세가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컴퓨터 여명기 잡스의 그늘아래서 역사를 도모했던 게이츠가 마침내 운영체제 하나로 테크월드 지배자로 부상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잡스의 이름이 언론을 탔던 이유는 그가 조지 루카스로부터 사들인 Pixar 때문이었다. 원래 그래픽 컴퓨터 전문회사로 시작했던 Pixar였지만 86년 잡스가 인수할 당시 존 레세터란 에니메니션 프로듀서가 혼자힘으로 회사의 명맥을 이었다.

일본 만화계의 대부 데즈카 오사무를 존경하던 레세터는 디즈니에서 새로운 만화를 개척해야한다고 주장하다 결국 해고당했다. 컴퓨터 에니메이션의 미래를 확신했던 레세터는 Pixar에 새둥지를 틀고 자신이 원했던 에니메이션의 꿈을 태웠다.

그가 처음 만든 2분18초짜리 단편 “Luxor Jr.”는 할리웃 사상 최초의 컴퓨터 그래픽 만화영화였다. 상상을 뛰어넘는 “귀여운 이미지”의 레세터 작품은 86년 아카데미상 단편만화부문 후보에까지 오르며 세상을 놀래켰다. 책상위에 놓인 스탠드에 생명을 불어넣는 짧은 작품이었지만 그 충격은 놀라운 것이었다. 1백% 컴퓨터 그래픽으로 제작된 작품이어서이기도 했지만 레세터의 독특한 의인화 관점이 동물기반의 디즈니와 아기자기한 일본 만화 스타일을 벗어나는 획기적인 아이디어였기 때문이었다.

이후 레세터는 열악한 제작여건 속에서도 컴퓨터 애니메이션 장르를 혼자 개척했다. 88년 4분짜리 “Tin Toy”가 아카데미상 단편만화 최우수상을 수상하자 레세터와 잡스의 이름이 할리웃을 휩쓸었다. 하지만 만화업계가 그렇듯 Pixar 역시 돈먹는 하마였다. Pixar의 시도는 할리웃과 테크업계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고 있었지만 수익모델은 여전히 요원했고 잡스는 적자운영을 떼우기 위해 자신의 개인자금까지 털어넣고 있었다.

90년 봄 잡스는 Pixar 의 하드웨어 분야를 Viacom에 매각해버린다. 회사의 그래픽 컴퓨터 기술로 한몫잡으려했던 잡스는 만화제작 인원들만 남기고 엔지니어들 모두 내보냈다. 그럼에도 여전히 Pixar의 적자구조는 개선될 기미가 않보였다. 잡스는 Pixar를 어떻게든 다른 회사에 합병시키려했다. 그때쯤 잡스의 머리속은 복잡했다. 자신이 붙잡고 있는 사업을 제대로 일으켜야한다는 생각과 더이상의 손해를 막기위해 포기해야한다는 결정 속에서 고민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중 마이크로소프트가 Pixar에 관심을 보였다. 네고의 과정이 진행됐지만 마이크로소프트는 인수결정을 마지막에 포기했다.

장편 만화 제작비가 없어 단편에만 매달려오던 Pixar에 92년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월트 디즈니의 제프리 카잔버그였다. 당시 최고의 만화제작자로 명성을 날리던 카잔버그가 Pixar의 가능성을 염두하고 장편만화 제작을 협의하려던 시도였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와 디즈니의 마이클 아이즈너 회장 사이에서 파워게임이 시작되면 Pixar와의 진행사업도 모두 중단됐다.

아이즈너는 80년대초 절박한 위기의 디즈니 대표로 취임해 회사를 반전시킨 할리웃 최고의 거물. 그는 혁신경영기법으로 디즈니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었고 카잔버그와 손잡고 “미녀와 야수,” “알라딘,” 그리고 “라이언 킹” 등 잇달은 블록버스터 히트작을 제작해 제 2의 월트 디즈니 부흥기를 가져온 장본인이다.

아이즈너의 오른팔이었던 카잔버그는 자신의 유명세가 정점에 오르자 더 많은 권한과 지위를 원했다. 하지만 카리스마의 지도자형인 아이즈너는 카잔버그가 만화제작에만 몰두하길 바랬다. 두사람의 관계가 틀어지면서 카잔버그는 디즈니를 박차고 나가 스티븐 스필버그와 손잡고 드림웍스 SKG를 세워 디즈니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다급해진 아이즈너는 카잔버그에게 뒤통수를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선수를 쳐야만했다. “라이언 킹”이후 이렇다할 만화제작 아이디어가 고갈된 상황 속에서 카잔버그가 디즈니를 배신했으니 아이즈너로서는 새로운 컴퓨터 만화 전문회사인 Pixar를 먼저 잡아야한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아이즈너는 자신의 전용기로 스티브 잡스를 초대했다. Pixar에 5년 동안 3편의 장편영화 제작을 계약하자며 2천5백만달러의 거금을 제의했다.

NeXT를 절반으로 줄이고 Pixar를 팔아치우려던 잡스에게 갑자기 하늘로부터 호박이 덩쿨째 떨어진 사건이었다. 덧붙여 할리웃 초특급 거물 아이즈너는 스스로 자기집에 호랑이를 불러들이고 말았다는 사실을 상상도 못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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