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잡스 2.0] 37. 무엇에 쓸것인가

July 20,2012                      hit:(6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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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폰 개발이 한창일 당시 스티브 잡스의 철저한 보안유지로 인해 전세계 테크 언론들은 애플의 타블렛 출시여부에 더 촉각을 곤두세웠다. 2003년부터 시작된 타블렛 연기는 애플 관련 기사의 단골 메뉴였다. 하지만 그때마다 잡스는 “타블렛은 애플의 방향과 맞지 않는다”고 연막을 펼쳤다.

사실 타블렛 컴퓨터는 마이크로소프트(MS)가 시초다. 창조적인 일과 거리가 먼 회사였기에 지금까지도 MS 창립자인 빌 게이츠는 자신의 최대작품으로 타블렛을 꼽는다. 20001년 게이츠는 컴퓨터 제조사를 설득해 노트북 이후를 담보하는 타블렛 노트북의 출시를 밀어붙였다.

당시의 타블렛은 지금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일단 외형 측면에서 노트북과 타블렛은 구분짓기 어려웠다. 차이점은 단지 펜모양의 입력도구 스타일러스와 이를 위한 터치스크린 LCD 모니터였다. 모니터위에 스타일러스를 누르는것으로 마우스를 대체했고 직접 글도 쓸 수 있었다. 하지만 당시의 하드웨어 보다 소프트웨어가 너무 앞서간 대표적인 사례였다. 사용목적이 불투명했고 타블렛 LCD는 스타일러스 입력을 위해 스크린위에 특수 코팅 레이어가 포함됐고 이 때문에 모니터는 뿌옇게 보였다. 그럼에도 게이츠의 타블렛 찬양은 끝이 없었다.

마우스에서 스타일러스 그리고 키보드를 없애자는 게이츠의 꿈이 틀린것은 아니었지만 그가 제시한 타블렛은 당시 기술력의 한계 때문에 사용하기 불편했을 뿐만아니라 더 중요하게는 상품 가치를 부여하기 어려웠다. 이 때문에 테크 기자들은 애플에서 만들면 제대로 만들것이란 생각을 품고 잡스를 만날때마다 언제 타블렛을 출시할거냐는 질문을 던지곤 했다. 그러나 잡스의 대답은 항상 “No” 였다.

2007년 5월 월스트릿저널은 연중행사인 All Things Digital 컨퍼런스를 개최하면서 IT업계 최대 거물인 스티브 잡스와 빌 게이츠를 초대해 공개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자리에서 게이츠는 여전히 컴퓨터의 미래가 “타블렛에 달렸다”고 주장했지만 잡스는 관심없다고 잡아뗐다. 실제 MS에는 이미 타블렛 부서마저 사라저버렸을 때였다. 그럼에도 게이츠가 타블렛 애창곡을 부른 이유는 터치스크린 기반으로 세상을 휩쓸고 있던 아이폰 대항마를 꿈꿨기 때문이었다.

언제부터 잡스가 타블렛을 고민했는가는 이미 다양한 경로를 통해 알려진 이야기가 하나 있다. 잡스는 2003년 게이츠의 저녁 식사에 초대받았고 그자리에 참석한 한 MS 간부가 시장의 외면을 받고 있는 타블렛을 입에 침이 마르도록 자랑하는 것을 보고 엮겨움을 참지 못했다고 전해진다. 그는 속으로 “그럼 내가 한번 만들어 보여주지”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특명을 받은 애플 디자인 수석부사장 죠니 아이브는 곧바로 타블렛 디자인에 착수했지만 잠시 우선순위를 바꿔야했다. 아이폰 개발이 시작됐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이브와 잡스는 끊임없이 타블렛 개발 목적을 논의했다.

“무엇에 쓸 것인가”란 질문은 이 두사람의 머리속을 떠나지 않았다. 노트북을 대신할 물건인가 아니면 또 하나의 더 작은 노트북인가. 새로운 상품을 개발하기 위해 이러한 고민을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다른 디지털 기기 제조사에서는 보기 힘든 광경이었다.

무언가 새로운게 있다면 일단 만들고 보자는 생각, 그래서 소비자들의 불만을 사도 차후에 업그레이드 버젼을 내놓으면 그만이라는 배째라 정신은 그때까지 컴퓨터 제조사를 지배해온 디지털 경영 마인드였다.

하지만 잡스는 그럴 수 없었다. 새로운 기기는 정말 소비자에게 꼭 필요한 것이어야했고 완벽하게 사용하기 쉬워야했으며 무엇보다 기존 기기들과 차별화된 혁신적인 것이여야만 했다. 하지만 그는 당시의 기술력과 제반 부품 환경을 볼때 자신의 아이디어를 담아낼 타블렛을 그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로부터 4년이 지나 아이폰을 성공리에 출시했고 앱스토어 붐을 조성했으며 터치스크린과 손가락 제스츄어 입력방식을 대중화 시키는데 성공했다. 모두 맥 OS X 기반의 모바일 운영체제 iOS 덕이었다. 또 아이폰의 매스마켓 진입으로 터치스크린 디스플레이 등 주요부품 가격이 떨어졌고 더 고사양의 레티나 디스플레이까지 확보할 수 있었다.

하드웨어적으로는 노트북보다는 저사양이지만 스마트폰 보다는 고사양이어했다. 잡스는 2008년 이미 이를 위해 실리컨 벨리의 저전력 CPU개발 회사인 PA Semi를 인수했다. 이들의 기술력을 이용해 타블렛전용 CPU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컴퓨터 여명기에 모토롤라/IBM과 함께 이미 CPU개발 노하우를 축적했던 애플이었다. 고사양 컴퓨터에서는 인텔의 독주체제였지만 저사양을 요구하는 타블렛의 CPU는 애플이 직접 만든다는 계획이었다.

물론 이 때문에 잡스와 개발자 사이에 격한 논쟁이 오갔다. 애시당초 잡스는 인텔의 저사양 CPU 아톰칩을 고려했다. 하지만 배터리 소모 문제 때문에 절대 안된다는 토니 페덜의 고집을 꺽을 수 없었다. 오래전의 잡스 같았으면 페덜이 쫓겨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잡스는 개발 회의석상에서 만큼은 “베스트 아이디어가 방향을 결정짓는다”는 애플 제1의 경영 원칙을 세웠고 아이팟 개발의 산파역이었던 페덜에게 자신의 고집을 꺽고 말았다. ARM사의 저전력 CPU 디자인에 애플이 직접 그래픽과 램 메모리 기능을 추가하는 System-On-Chip 디자인으로 가닥을 잡았다.

잡스는 아이폰의 급속한 보급을 지켜보면서 마침내 타블렛의 출시가 다가왔다고 생각했다. 타블렛은 스마트폰과 노트북 사이에서 사용의미를 찾아야한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게 아니라 정확하게 목적을 가진 그 중간자 역할을 해야만 혁신적인 새로운 기기로 탄생한다는 잡스의 생각이 실현될 타이밍이 다가온 것이다.

잡스와 애플 개발진들은 타블렛의 목적을 정의했다. 스마트폰 보다 강력한 인터넷 커뮤니케이터(Connection), 10시간을 사용해도 죽지않는(Constant) 배터리, 가장 쉽게 사용하는 온라인 소비 시장(Consumption)의 정착. “3 C” 였다.

경박단소는 소니 워크맨 이후 모든 디지털 기기 제조사의 목표였다. 하지만 컴퓨터는 모니터와 본체 키보드 조합물 이었다. 또 노트북은 여전히 들고다니기 무거웠고 게다가 90분이면 배터리가 닳아버렸다. 모바일 인터넷이 활성화되고 있었지만 스마트폰의 스크린 사이즈가 제약이었다. 잡스는 이러한 문제점을 일거에 해소할 혁신적인 포터블 기기를 그려냈다.

애플 타블렛 소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타나는 양상이었다. 2009년 10월 뉴욕타임스는 “안개속의 타블렛 PC”란 기사를 통해 애플 타블렛의 출현이 임박했음을 예고하면서 “아마존의 독과점체제인 ebook 시장과 사양길에 접어든 신문 산업의 돌파구”가 될 것을 예측했다.

그 어느때보다 집중력이 필요했지만 암세포는 잡스의 심신을 장악하고 있었다. 애플의 모든 업무를 관장하던 그였지만 2009년초 간이식 수술 후에는 타블렛에만 몰두했다. 가볍게 들고다니는 컴퓨터, 하루종일 사용해도 꺼지지않고 모바일 인터넷을 최대로 확장할 수 있는 간편기기는 잡스의 꿈과 땀으로 이뤄진 최후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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